정부가 김영란법의 식대 '3만원 이하' 규정을 '5만원 이하'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 언론인 등 공인이 직무 연관성이 있는 대상과의 부정행위을 미연에 막기 위해 서로가 주고받을 수 있는 식사, 선물, 경조사비 금액을 제한해 명문화 했습니다. 식대 3만원 이하, 선물가격 5만원 이하, 경조사비 10만원 이하.
그런 김영란법의 금액제한이 조정될 것이라는 기류가 포착됐습니다. 정월초하루 설을 10여 일 앞둔 1월18일 연합뉴스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3·5·10'서 '5·5·10'으로 수정하기로'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내용은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정부가 기존 3만원이던 밥값을 5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며, 당장 오는 '3월'부터 변경시행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누리꾼들의 설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밥 먹는 것을 가지고 제재하나' '매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합리적'이라는 찬성 측 반응, 반면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 최소 3년은 두고 보고 나서, 나중에 올려야 한다' '한끼 5만원짜리가 정상인가? 한끼 3만원도 일반 국민들에겐 그림에 떡'이라는 반대 측 반응. 양측 간 비율을 살펴보면, 반대 측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따져물으며 탄생한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청탁금지법은 사회에 만연해 있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온 뿌리 깊은 '부정(不正)'을 타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입니다. 전격 시행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처럼, 청탁금지법도 결국 국민 다수의 지지에 힘입어, 갖은 방해공작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국민을 대신해 대의(代議)한다는 입법권자들의 손을 타며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1월18일, 오늘은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난해 9월28일로부터 113일째 되는 날입니다. 병신년(丙申年) 묵은 해가 가고 정유년(丁酉年) 새로운 해를 맞은 현재, 우리 사회는 기대했던 것처럼 이전보다 정의로워졌을까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을 뜻합니다.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으면 고마워서 자신도 상대에게 뭔가를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인지상정은 대개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혹 나쁜 방향으로도 작용하곤 합니다. 또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으로, 아무 관계도 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됨을 이릅니다. 공명정대(公明正大)라는 말도 있습니다. 마음이 공평(公平)하고 사심(私心)이 없으며 밝고 커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인은 여러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사회를 위해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적영역에 인지상정으로 인해 생기는 부정을 차단하고, 공평하고 사심없는 공명정대한 가치를 세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오비이락 같은 불필요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도와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청탁금지법은 한강의 기적을 쏘아올린 역동의 대한민국 사회가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견강부회가 아닐 겁니다. 갈 곳을 잃어버린, 방향을 잃어버린, 정의를 잃어버린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추어주는 등불이자, 바른 방향를 알려주는 나침반이요, 닫혀버린 정의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약속'입니다. 그런 우리의 약속이 시행 넉달 만에 깨지려 합니다. 물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닐 겁니다. 가다가 때론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게 마련입니다. 이는 통과의례입니다. 아이가 어른이 돼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런데 벌써 두손 두발 들었다고요? 벌써 포기하겠다고요? 아이들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이 살아갈 터전이기도 합니다. 벌써 3·5·10이라는 우리의 약속을 깨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우리의 약속을 바꿀 게 아니라, 우리가 변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의 사회적 DNA는 아직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andcuffs-200606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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