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은 거제현으로 좌천되어 가는 이 사관(李史館)에게 이규보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 사관(史館)은 역사를 편찬하는 관서이니 이 사관이라고 불린 사람은 당대에 글을 가장 잘하는 엘리트요 앞날의 출세가 보장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죄인들이나 유배 보내는 머나먼 남쪽 바닷가 거제로 쫓겨났으니 몹시도 억울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초야에 들어가 은둔해 버릴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보통의 벗이라면 이럴 경우 상대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혹은 위로하는 말을 해 주었을 텐데 뜻밖에도 이규보 선생은 축하한다는 말을 합니다.
“축하할 만한 것이 두 가지이다. 하늘이 어떤 사람을 성공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어려운 일을 내려주어 시험하니, 이것은 천지자연의 이치이다. 그대는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좌천되었으니, 이는 반드시 장차 큰 복을 받을 조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도를 깊이 터득하는 자는 대부분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서 지낸다. 왜냐하면 그런 곳에 있어야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도(道)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대가 가는 곳은 어떤가? 땅은 고요하고 사람은 적으며, 관청은 한가하고 일이 별로 없어 마음을 침범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항상 밝고 고요한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며 모든 영욕(榮辱)을 잊어버리고 만물(萬物)의 근원에서 노닌다면 도에 더욱 깊이 들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도가 내면에 가득 차면 윤기가 겉으로 드러나 저절로 어린아이 같은 신선이 될 것이니,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그대의 몸이 장자(莊子)나 노자(老子)처럼 될지, 아니면 안기생(安期生)이나 선문자(羨門子) 같은 신선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들이 옷자락을 부여잡고 도를 묻게 될 것이니, 이것이 또 하나의 축하할 만한 일이다.”
※ 이 글은 『동문선(東文選)』 권83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좌천되어 실의에 빠진 벗이여, 긴 안목으로 보면 이 일이 오히려 축복이라네.’ 어려운 시련을 잘 이겨내면 나중에 반드시 크게 쓰일 날이 올 것이요, 그동안 일에 치여 살아오느라 황폐해진 자신의 내면을 가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느냐는 선생의 이 말씀은 작은 성취와 실패에도 일희일비하는 현대인들에게 참으로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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