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념시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무총리 기념시계도 아닌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기념시계가 제작돼 유포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한국 사회에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지난 2월21일 국내 한 온라인 중고거래 커뮤니티에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고 인각된 여성용 기념시계가 20만원 매물로 올라왔습니다. 해당 시계는 여느 정부인사의 기념시계처럼 우리 정부 상징마크가 찍힌 케이스와 함께 포장돼 있었습니다. 이 시계의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 기념시계 가운데 '권한대행'이라는 직함이 찍힌 사례는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판매자는 '프리미엄' 주장까지 하고 나섰습니다. 소위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으로 불리는 한정판이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해당 상품에 대한 관심도 줄을 잇고 있는데, 어떤이는 절반가격인 10만원에 살 수 없겠냐며 가격 흥정에 나섰습니다. 아울러 1만원에 산다는 사람, 18원에 사겠다는 사람도 눈에 띕니다. 특히 해당 상품 페이지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리며, '조롱성' 방문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황 총리가 왜 그렇게 '권한대행'이라는 직함에 목을 매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소리가 나올 만합니다. 사실 권한대행은 권한대행일 뿐이지, 권한대행을 하나의 직함으로 취급한다는 자체가 우리 사회의 병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황 총리는 단지 총리이며 탄핵이라는 국정공백이 발생한 상황이기 때문에, 관련 규정에 따라 한시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한다는 정도로만 해석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정부고 언론이고 정치권이고, 총리를 총리라 부르지 않고 굳이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명칭을 써가며 이 비상시국에 쓸데없는 관례와 의전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대신해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거나 다른 우선순위가 높은 행사에 방문하게 될 경우, 대통령을 대신해 자리를 참석하곤 합니다. 그 자리에서 국무총리를 국무총리라 부르지, 대통령 대신 왔다고 해서 국무총리를 '대통령 대행'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그런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탄핵절차에 따라 몇달간 조금 장기간 대행을 맡는다 뿐이지, 한시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자의 공식 호칭을 '권한대행'이라고 부르는 일은 너무 한심해 보여 웃음이 다 나올 지경입니다.
황 총리가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아울러 내각제 기반 국가에서는 총리가 국가수반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굳이 총리를 총리라 부르지 않고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말은 수식어에 불과하며, 황 총리의 공식 직함은 '국무총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황 총리는 대통령놀음 삼매경인 것 같습니다. 권한대행으로 등극하자마자 굳이 명패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바꿨는가 하면, 또 굳이 이번에 밝혀진 바와 같이 '대통령 권한대행' 기념시계를 만들어 배포하며 비난을 자초했습니다. 물론 이는 황 총리가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황 총리를 보좌하는 부하직원들의 과한 의전이 문제가 된 것이겠죠. 하지만 지난번 서울역 사건이나 명패, 기념시계 등을 봤을 때, 그 집안 사람들은 어른이고 아이고 과도한 의전이 몸에 밴 듯합니다. 이를 두고 황 총리의 대통령놀음이 지나치고 오만하다는 비판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전 권한대행 사례와 다르게 '매우 적극적' 대통령 고유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나옵니다.
모두 아는 것처럼, 대한민국 국가정책에 무소불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무이 '제왕적'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한민국 공직 서열 5위이자, 행정부만 놓고 봤을 때 대통령에 이어 서열 두번째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어지러운 시국에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를 꿰찼습니다. 대한민국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나온 것은 이번까지 총 두 차례입니다. 대통령으로서 국내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되는 위법행위를 저지른 고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이 통과되면서 당시 권한대행으로 고건 총리가 이름을 올린 바 있으며, 이번 18대에서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오고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으로 등극했습니다. 앞서 최초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바 있는 고건 총리는 시국을 감안해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을 최소화하며, 반드시 필요 행정명령만 소극적으로 다루는 등 역대최초 권한대행으로서 모범적 선례를 남겼습니다. 대행을 맡는 동안 발언도 최대한 삼가며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성공적 임무 완수라는 사회적 평가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황 총리는 앞선 모범 사례를 따르지 않고 정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이 어지러운 시국에 사회 분열만 더 조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 명패, http://www.starseoultv.com/news/photo/201701/441990_268355_641.jpg
|
총리는 선출직도 아닐 뿐더러 대통령 탄핵 절차 진행으로 인한 국정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탄핵이 기각되고 대통령이 복직하든 아니면 탄핵이 인용되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든, 국정공백이 해소되기까지 반드시 필요한 때에만 소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황 총리는 권한대행이 된 후 어찌된 영문인지 언론에 과도하게 노출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대행직을 맡아오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대한민국 국가정책의 결정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직접 손으로 뽑은 선출 대통령이지, 한낱 대통령 개인이 임명한 권한대행이 나서서 국가정책을 함부로 결정하거나 국민에게 국가정책을 제시하거나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잠시 다른이의 자리를 맡고 있는 대리인인 것치고는 자신의 한시적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최대한 즐겨보겠단 심산인 건지 황 총리가 대통령놀음 삼매경에 빠졌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메인사진, 한 온라인 중고거래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 인각 기념시계 화면 캡처 + 온라인게임 오버워치 로고 합성. https://ncache.ilbe.com/files/attach/new/20160621/28622079/37656970/8273249122/34889f1815c174e8d36f92e234862d90.jpeg
junatown@gmail.com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