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중(韓中) 간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한중 수교(修交) 이래 사이가 이렇게 좋았던 적이 없다고 떠들썩하더니, 근래 와서는 이렇게 나쁜 적도 없다는 정반대의 말만 늘어놓습니다. 이는 고고도(高高度)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인한 것인데, 사드에는 엑스밴드레이더(X-band radar)라고 하는 커버력 좋은 탐지장비가 장착돼 있습니다.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북한군뿐 아니라 중·러 동부 일부지역까지 탐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국의 전략자산인 군사시설과 탄도미사일 기지 등의 노출을 우려하는 중·러의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아·태지역 미사일 방어(MD·missile defense) 체제 완성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며 사드 배치를 압박(壓迫)하는 미국과 그렇게 하지 말라는 중국 사이에 끼어서 군사·경제·외교 등 전방위적인 겁박(劫迫)을 받으며 양자택일(兩者擇一)을 강요받는 형국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배다른 이복형제인 북한의 끊임없는 서울 불바다 위협 및 핵도발로 인해 언젠가는 우리의 미흡한 미사일 방어체계를 손보긴 해야 할 운명입니다. 방어 없이 무차별 공격 일변도(一邊倒)의 북한식 막가파 전략으로 우리의 총체적 군사전략이 바뀌지 않는 이상 말이죠.
그런데 말도 많고 논란도 큰 '사드'가 직접적으로 우리의 안위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모르겠습니다.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말로만 들어봤지 사드가 북의 핵공격에 대한 대안이자 최후의 보루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안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가능성도 클 것라고 예상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드를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최후의 보루는 사실상 '미국'이라고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을 못 이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오히려 우리가 북한군을 압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지출한 국방예산이 허투루 사용되지 않았다면 말이죠. 그럼에도 북한의 핵은 정말 심각한 위협임에는 분명합니다. 전황(戰況)을 한방에 뒤집을 수 있을 만큼 말이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렇게나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리틀보이(little boy)'와 '팻맨(fat man)'이라는 미국의 원자폭탄 두 방에 모든 걸 내려놓았을 만큼, 핵은 국가 간 전쟁에서 무시무시한 비대칭(非對稱) 전력임에 틀림없습니다.
현재 우리의 주적(主敵)인 북한의 핵개발이 사실상 완성 단계라는 것은 통설(通說)입니다. 우리가 6.25남북전쟁 때처럼, 낙동강전선까지 후퇴하더라도 미국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는 한 우리에게는 언제나 승기(勝機)가 남아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 미국의 손을 놓고 중국 편에 선다는 것은 남북 통일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중국도 이러한 역학관계를 모르는 바는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이처럼 발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반도 사드 배치는 결국 중국의 '굴기(崛起)'를 태평양 외부로 확장하는 것을 차단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명실상부한 G2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중국의 발목에 족쇄(足鎖)를 거는 효과가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이 남동 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쿠릴열도 등지에서 영토 분쟁을 마다 않고 있는 것은 자국의 해상영토 즉 영해(領海)를 그만큼 넓히기 위함입니다. 한반도의 사드 배치는 북·중·러 대(對) 한·미·일로 대립되고 있는 신냉전 체제의 간접적 영공(領空)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물론 실제 영공의 소유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대국 상공에 대한 견제와 간접적인 지배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옛말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相對)를 알고 자신(自身)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危殆)롭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상대를 잘 알기 위한 포석이며, 상대의 공격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해 큰 화를 예방해줄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우리에게 '사드'란 거부할 수 없는 카드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현재 한국과의 모든 문제를 사드와 결부시키며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 상황입니다. 근래 들어 혐한령(嫌韓令)이라는 21세기에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든 저급 보복조치를 강행(強行)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반발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한국을 압박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릴 리는 만무합니다. 사실 중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서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이 소위 갑질을 일삼으며 거래를 일방적으로 끊으면, 다른 거래처를 찾으면 될 일입니다. 물론 쉽지 않을 테지만요. 그러나 사드 말고도 언제든 다른 건으로든 한중 간 이 같은 외교적 마찰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더라도, 힘 센 상대의 방법이 정당하지 않는다면 한발 물러설 게 아니라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상대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강공책도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한번 물러서기 시작하면, 다음 번에 또, 그 다음번에 또다시 물러서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며 우리의 부끄러운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게 될 뿐입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예고된 결말이었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운명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기회가 분명 있었음에도 부여잡지 못 하며 가장 험난한 길을 택한 우리 정부의 어리숙한 판단실패는 아쉬운 대목입니다. 애초 우리정부의 성급한 결정이 오늘의 화를 불렀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었고 사드 한반도 배치라는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지만, 외교정치가 형편없었습니다. 외교든 정치든 모두 명분 싸움이지만, 우리의 패착은 우리의 명분을 우리가 스스로 놓아버렸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가는 수가 패착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패착이 우리 외교에 빈틈을 만들었습니다. 중국 측에 불필요한 환상을 갖게 했습니다. 그런 위험한 수를 두는 때는, 그에 걸맞는 선견지명을 가지고서 접근했어야 옳습니다. 근시안적 한수 두수 앞이 아닌 50수, 100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한·중·일·미 외교 분위기에 '취해' 한치 앞만 내다보고서, 그 같은 리스크가 큰 수를 두었다는 점은 지도부의 역량을 의심케 하기 충분합니다.
당시 중국은 한국이 참 쉬워보였을 겁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원하면 언제든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연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해보이니,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당시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꽃놀이패를 즐기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를 가지고 더 딜을 하며, 강대국으로부터 받은 '공'을 미국 중국 등으로 돌리며 확실한 명분과 실리를 챙겼어야 합니다. 사드배치를 너무 섣불리 결정해버린 나머지 결국 지금과 같이 우리만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당시 현명한 외교술을 부렸다면, 이처럼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할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사드 문제로 미중 간 외교에서 처참히 실패한 우리 정부는 당시 만들었어야 할 외교적 명분은 잘 만들지 않고, 엉뚱하게도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서야 반발하는 국민을 향해 명분(=핑계) 대기 바쁘다는 점일 겁니다. 이래서 좋은 지도자를 잘 골라야 합니다. 지도자가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지도자 주위에는 자연스레 좋은 인재가 모이게 마련입니다. 우리 외교의 실패는, 우리 공동의 책임입니다. 다음 19대에서는 좋은 인재가 많이 모여 든 좋은 지도자를 뽑아야 하겠습니다.
사진1, 박근혜 대통령, 시진핑 주석https://c2.staticflickr.com/6/5539/9156446275_1af1f24df1_b.jpg, 사진2, 사드,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5/The_first_of_two_Terminal_High_Altitude_Area_Defense_(THAAD)_interceptors_is_launched_during_a_successful_intercept_test_-_US_Army.jpg, 사진3, 핵실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9/Operation_Crossroads_Baker_Edit.jpg, 사진4, http://cfile30.uf.tistory.com/image/2718964D56D3A70932D2C3, 사진5, https://c1.staticflickr.com/3/2610/4020584983_0ec7ef97d7_z.jpg?zz=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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