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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책] '대도불거 민진류(大盜不去 民盡劉)' 다산이 말한 큰 도적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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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적을 제거해야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이 다 죽을 것이다.


大盜不去, 民盡劉.
대도불거, 민진류.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감사론(監司論)」
해설
   18세기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통렬히 지적하고 강력한 개혁을 주장했던 다산(茶山) 선생께서 지방의 최고 관리인 감사(監司), 관찰사(觀察使)에 대해 논하신 글이 바로 「감사론」입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깊은 밤, 담에 구멍을 뚫고 문고리를 따고 들어가서 주머니를 뒤지고 상자를 열어 옷이며 이불, 그릇 등을 훔치거나 가마솥을 떼어 메고 도망하는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굶주린 자가 배가 고파 그런 것이다.
   칼이나 몽둥이를 품에 감추고 길목을 지키다가 길가는 사람을 가로막고 소나 말, 돈을 빼앗은 다음 그를 찔러 죽여서 증거를 없앤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어리석은 자가 본성(本性)을 잃어서 그런 것이다.
   멋진 안장을 얹은 준마를 타고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가서, 횃불을 켜고 창과 칼을 벌여 세운 다음, 부잣집을 골라 곧장 마루로 올라가 주인을 묶고 재물 창고를 몽땅 털고 창고를 불사른 뒤 감히 발설하지 못하도록 거듭 다짐을 받는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오만한 자가 배우지 못하여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도적인가? 관리가 되어 부신(符信) 주머니를 차고 인끈을 두르고 한 성(城)이나 한 보(堡)를 마음대로 다스리면서, 온갖 형벌 도구를 진열해 놓고 날마다 춥고 배고파 지칠 대로 지친 백성들을 매질하면서 피를 빨고 기름을 짜내는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비슷하기만 할 뿐 역시 작은 도적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보통의 도적은 물론 심지어 부패한 관리마저도 도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건 도적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말씀이죠. 도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도적이 따로 있기에 이러시는 건지, 선생께서 말씀하신 큰 도적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너무 길어서 줄이려고 해도 잘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만큼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른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큰 도적이 있다. 큰 깃발을 세우고 큰 양산을 받치고 큰 북을 치고 큰 나팔을 불면서 두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옥(玉)으로 꾸민 모자를 썼는데 뒤따르는 자는 수백 명이다. 여러 현(縣)과 역(驛)에서 안부를 묻고 영접하는 아전과 하인이 수백 명, 타는 말 백 필에 짐 싣는 말 백 필,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한 여인네가 수십 명……< 중략>
   손에는 채찍을 쥐고 백성들이 호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이 8인, 길가에서 보고 탄식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다. 이르는 곳마다 화포를 쏘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음식을 갖추어 올리는 자들이 엎어지고, 한 번의 식사에 혹시라도 간을 잘못 맞추었거나 음식이 식었으면 담당자에게 곤장을 치게 한다. 곤장 치는 사람이 모두 10여 인이나 되는데 일일이 죄를 따지며 다음과 같이 책망한다.
“길에 돌이 있어서 내 말이 넘어졌다.” “떠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영접하는 여인이 적었다.” “병풍과 자리가 볼품없었다.” “횃불이 밝지 않고 구들이 따뜻하지 않았다.”

이런 게 감사의 행차입니다. 요란한 의전 행렬과 뒤따르는 무리들, 그리고 행차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소한 실수에 대한 생트집. 그렇지만 이제부터 나올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좌정하고 나서는 서리(胥吏)를 불러서 여러 군현(郡縣)에 공문을 보내는데, 바칠 곡식을 돈으로 환산하여 바치도록 명령한다. 1곡(斛) 값으로 150냥을 바치면 노하여 꾸짖으면서 200냥까지 올린다. 곡식을 짊어지고 오는 백성이 있으면 곡식은 받지 않고 돈으로 200냥을 내도록 한다. 다음 해 봄에 200냥을 셋으로 나누어 1/3을 백성에게 주면서 “이것이 1곡(斛)의 곡식 값이다.”라고 한다.
   바닷가에는 큰 상인들이 많으니, 곡식 값이 폭등하면 창고에 저장했던 곡식을 모두 내다 팔아 돈으로 바꾼다. 산간 고을에는 곡식이 많으니, 곡식이 썩으면 이를 싸게 사서 창고에 저장하고 노적(露積)도 한다. 이러니 곡식에 다리가 생겨서 하루에 백 리를 달리고 7일이면 7백 리를 달려가서 바닷가에까지 이르게 된다. 바닷가에 사는 굶주리고 지친 백성들은 고달픔을 견디다 못해 아내와 자식을 팔면서 피거품을 토하다가 잇달아 쓰러져 죽는다. 이렇게 해서 남은 돈을 계산해 보면 수만 냥에 달한다.
   묘지(墓地)에 대해 송사(訟事)하는 사람은 유배시킨다. 영장(令長)이 가혹한 정치를 한다고 호소하면 유배시키고, 그 벌금(罰金)은 40냥에서 100냥까지다. 병든 소를 도살한 사람은 유배시키고 그 벌금은 30냥에서 100냥까지다. 이렇게 해서 남은 돈을 계산해 보면 수만 냥에 달한다.
   토호(土豪)와 간사한 아전들이 도장을 새겨 위조문서를 만들고 법률 조문을 멋대로 해석하여 법을 남용하면 “이것은 못 속의 물고기이니 살필 것이 못 된다.”라고 하면서 감싸고 숨겨준다. 효도하지 않고 우애하지 않고 아내를 박대하고 음란한 짓을 하여 인륜을 문란하게 만든 사람이 있으면 “이것은 말을 전하는 사람이 잘못 전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전연 모르는 듯이 지나쳐 버린다.
   부신(符信) 주머니를 차고 인끈을 늘어뜨린 사람이 곡식을 팔아먹고 부세(賦稅)를 도적질한 것이 이와 같은데도 이를 용서하여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근무 성적을 평가할 때에도 이들을 첫째로 매겨 임금을 속인다. 이런 사람이 어찌 큰 도적이 아니겠는가. 큰 도적인 것이다.

   백성을 보살피고 보호하라고 보내는 감사가 오히려 백성을 수탈하고 쥐어짜니 그 백성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백성이 다 죽고 나면 누구를 다스리려고 그러는 것일까요? 도대체 이런 큰 도적을 막거나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이 도적은 야경(夜警) 도는 사람도 감히 따지지 못하고, 의금부(義禁府)에서도 감히 체포하지 못하고, 어사(御史) 도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재상(宰相)도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멋대로 난폭한 짓을 저질러도 아무도 감히 따지지 못하고, 전장(田庄)을 설치하고 수많은 토지를 소유한 채 종신토록 안락하게 지내지만 아무도 이러쿵저러쿵 헐뜯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어찌 큰 도적이 아니겠는가. 큰 도적인 것이다. 그래서 군자(君子)는 이렇게 말한다.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이 다 죽을 것이다.”

   권력을 움켜쥔 자가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수천억의 재산을 쌓아두고 희희낙락 즐기는 동안, 한편에서는 힘없는 백성이 하나둘씩 죽어 나가는 모습이 결코 옛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큰 도적은 여전히 법망을 무시한 채 활개 치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용문의 원문보기]
조경구
글쓴이조경구(趙慶九)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주요 저·역서
  • 문집(『향산집』, 『창계집』), 『승정원일기』(영조대) 등 번역
  • 『한문에게 말걸기』, 다락원, 2005
  • 『생각 세 번』(공저), 한국고전번역원, 2013
  •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밀』, 한국고전번역원, 2016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책, 고전명구, 삼백열다섯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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