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 보면, 아프리카 탄자니아 어느 후미진 곳서 촬영한 사진 속에서나 봤음직한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사실 이는 서울 한복판서 촬영한 사진이다. 강렬했던 올해 무더위가 채 가시기 전인 지난 9월 9일 업무차 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에 자리한 서울혁신센터에 들렀다가, 한쪽 모퉁이에 자리잡은 파란 드럼통들을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고 퍽 인상적인 풍경이라서 폰카(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파란 강철 드럼통들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곧게 서 있는 모습이 짐짓 낯설고 이국적이게 느껴졌다. 추측해보건대 이 드럼통들은 이렇게 반듯이 잘라져 화분 같은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충실했던 원래의 삶을 뒤로한 채 새롭게 마주하게 되는 제2의 삶. 지금은 제 몸 반쪽이 잘려나가 안이 텅 빈 공허한 상태지만, 원래는 무언가를 소중히 안에 품고서 바지런히 어딘가를 또 어딘가를 정처 없이 방랑했을 삶. 황혼, 일생의 막바지에 와서야 새롭게 도착하게 된 이곳.
갈색으로 칠해진 통 안에는 과거 어떤 소중한 것들이 담겨져 있었을까. 뭔가 아주 값비싸거나 귀중한, 혹은 인체에 아주 치명적이거나 위험한, 또는 어떤이들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담겨져 있었겠지. 사진 속에는 저 파란 강철 드럼통들이 과거 어떤 일생을 살았을지 짐작하게 해줄 만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BEFAR' 'TRICHLOROETHYLEN'이라는 파란 외관에 대비돼 보이는 새하얀 글자는 이들의 과거를 선명하게 비춰준다. 저 통들은 과거 중국 빈화(滨化, BEFAR)사에서 취급하는 '트리클로로에틸렌(trichloroethylene, TCE)'이라는 화학물질을 보관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과거, 자신보다 자신이 품고 있던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살았을 인생. 이역 한국에 도착한 후 사용을 마치고 용도 폐기된 채 불안에 떨어야 했을 시간들.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험난한 여정 끝에 도착한 이곳.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인생 2막.
junatow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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