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책에 대한 형태서지학의 술어들-서제(書題: 책의 이마), 서두(書頭: 책의 머리), 목차(目次: 눈), 책의(冊衣), 표제면(標題面), 권수(卷首: 권의 머리) 등-은 신체와 관련된 연상적 의미를 상기시킨다. 책에 관상을 적용할 수 있다면, 목차는 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아닐까?
목차(contents, a table of contents)는 우리나라 옛 책에서 ‘목록(目錄)’이라 하여 책의 서문 뒤에 놓인다. 중국의 송간본(宋刊本)에 당나라 이하(李賀)의 『이장길문집(李長吉文集)』에는 ‘권목(卷目)’, 정곡(鄭谷)의 『정수우문집(鄭守愚文集)』에는 ‘표목(標目)’이라고 한 사례도 보이지만, 대체로 목록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쓰였다.
『고금도서집성』은 40권 20책의 목록권(目錄卷)이 있는데, 내용 파악을 용이하게 하고 해당 항목을 찾을 수 있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조선에서는 1776년 정사(正使) 이은(李溵), 부사(副使) 서호수(徐浩修) 등을 주축으로 한 진하 겸 사은사 일행에 의해 1777년 2월에 『고금도서집성』을 입수하였다. 이는 무영전(武英殿)에서 1726년부터 1728년까지 64부를 개화지(開化紙)와 태사련지(太史連紙)로 인쇄한 가운데 개화지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후 정조의 명에 따라 1780년에 열고관(閱古觀)에 보관하고서 편차를 정리하고 소제목(小題目)을 뽑아내어 장서 배치와 책의 목차를 담은 『도서집성분편제차목록(圖書集成分編第次目錄)』을 단책(單冊)으로 만들어서 매우 쉽게 책의 항목을 일별할 수 있게 하였다. 유사한 예로 일본의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古今圖書集成分類目錄)』(文部省國定敎科書共同販賣所, 1912), 영국의 『중국의 대형백과사전 흠정고금도서집성 알파벳순 색인집(An alphabetical index to the Chinese encyclopaedia 欽定古今圖書集成)』(Lionel Giles 편, 1911)도 있다.
『고금도서집성』의 목차는 단순히 책의 내용을 일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범례를 읽어보면, 하늘, 땅, 사람 순으로 그 편목의 구성과 순서에 일정한 논리를 부여하고 있다. 세상의 책을 우리들 앞에 놓고 어떻게 나눠서 지식을 분류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가 목록권에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유서(類書)의 목차를 읽는다는 것은 당대인의 지식의 지도(地圖)를 다시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위계를 재정(再整)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의 시문을 정리한 문집 목차는 저자의 열력(閱歷)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이자 그곳에 남겨진 발자국과 같아 집, 친구, 여행, 풍경, 유대, 죽음, 희로애락 등이 담겨 있다. 고려 때는 목차와 본문을 분리해서 편집하지 않고 목차에 이어 본문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조선에 와서는 목차와 본문을 따로 엮었다. 총목(總目)은 단순히 권별로 문체명을 기입하고, 권목(卷目)에 해당 문체에 속하는 작품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방식과 각 권의 목록을 모두 엮어 정리한 합권목록(合卷目錄)이 있다.
책의 내용을 쉽게 파악하는 방식으로써 어떤 방식이 좋은가 보다는 제책(製冊)의 선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목록권을 따로 만들어서 전체 열람에 편리를 추구하기도 있고, 아니면 각 권의 분량에 따라 성책(成冊)하여 해당 책을 펼쳤을 때 내용을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옛 책의 물체성에 따라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옛 책의 크기와 부피는 목록권을 따로 인쇄하거나 각 권의 부피를 고려하여 분책(分冊)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탁일 선생님의 보고에 의하면, 영남 문집은 합권목록을 만드는 경향이 보이며, 호남 문집은 목록을 각 권의 권두에 붙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집안의 문집 간행에도 적용되는데 선조의 문집 체례를 따라 후손들이 편집하는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어떤 날들은 책의 본문을 읽기보다 목차를 보는 나날들로 채워져 있다. 목차가 없는 책은 제목만을 따라 읽는다. 일종의 가상 목차를 만들어 읽은 셈이다. 지식을 담은 옛 책의 대문 앞에서 빗장을 열지 않고 문틈으로 얼핏 훔쳐보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아쉬움이겠지만, 나에게는 열락(悅樂)의 한 형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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