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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책] 목차는 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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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2017년 5월 15일 (월)
사백일흔아홉 번째 이야기
목차에 대하여
번역문
   청 성조(淸聖祖) 강희(康熙) 때에 여러 신하에게 명하여 국(局)을 설치하고 『도서집성(圖書集成)』을 편찬하게 하였는데, 세월만 보내다가 완성하지 못하였다. 세종(世宗) 옹정(雍正) 초년에 글 잘하는 신하들에게 책임을 맡겨 감독하게 한 지 3년 만에 비로소 완성하였는데, 장정석(蔣廷錫)-벼슬이 태학사(太學士)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며 강남(江南) 상숙(常熟) 사람이다.-이 총재(總裁)가 되었다. 모두 6휘편(彙編) 32전(典) 6천 1백 9부(部)에 1만 권이며, 또 목록(目錄) 40권이 있다

   우리나라 정조(正祖) 병신년(1776)에 부사(副使) 서호수(徐浩修)에게 명하여 비싼 값으로 『도서집성』을 구입하여 다시 장책하게 하니 모두 5천 20책에 5백 2투(套)였는데, 개유와(皆有窩)에 수장(收藏)하였다. 경자년(1780) 봄에 나의 조고 형암공(炯菴公: 이덕무(李德懋))에게 명하여 부목(部目)을 초하고 서제(書題)를 쓰도록 하였는데, 상의 주부(尙衣主簿) 조윤형(曺允亨)은 서명(書名)을, 사자관(寫字官)은 부목을 쓰게 하여 40일 만에 끝마쳤다.……

   여금(余金)의 『희조신어(熙朝新語)』에 “강희 때에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1만 권을 만들었으니 모두 32전(典)이다. 그 내용은 건상전(乾象典)ㆍ세공전(歲功典)ㆍ역법전(歷法典)ㆍ서징전(庶徵典)ㆍ곤여전(坤輿典)ㆍ직방전(職方典)ㆍ산천전(山川典)ㆍ변예전(邊裔典)ㆍ황극전(皇極典)ㆍ궁위전(宮闈典)ㆍ관상전(官常典)ㆍ가범전(家範典)ㆍ교의전(交誼典)ㆍ씨족전(氏族典)ㆍ인사전(人事典)ㆍ규원전(閨媛典)ㆍ예술전(藝術典)ㆍ신이전(神異典)ㆍ금충전(禽蟲典)ㆍ초목전(草木典)ㆍ경적전(經籍典)ㆍ학행전(學行典)ㆍ문학전(文學典)ㆍ자학전(字學典)ㆍ선거전(選擧典)ㆍ전형전(銓衡典)ㆍ식화전(食貨典)ㆍ예의전(禮儀典)ㆍ악률전(樂律典)ㆍ융정전(戎政典)ㆍ상형전(祥刑典)ㆍ고공전(考功典)인데, 전마다 문(門)과 유(類)를 나누어 모두 6천 1백 9부로서 책이 5백 20함(函)이고, 또 목록(目錄)이 2함이다.

   동활자가 오래되어 태반이나 이지러졌으므로 건륭 38년(1773)에 『사고전서』를 간행하려던 목활자로 바꾸어 인쇄하고 무영전취진판(武英殿聚珍板)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어제시(御製詩)가 있고 『어제집(御製集)』도 실렸으니, 이것이 『도서집성』이 이루어진 전말이다.” 하였다.
원문
淸聖祖。命諸臣設局。編纂『圖書集成』。因循未成。世宗雍正初年。切責詞臣。董督三年始成。蔣廷錫爲總裁。【官至太學士。諡文肅。江南常熟人。】 凡六彙編。三十二典。六千一百九部。一萬卷。又有目錄四十卷。我正廟丙申。命副使徐浩修。以重價購之。改裝潢。總五千二十冊。五百二套。貯于皆有窩。庚子春。命我王考炯庵公。抄部目監題。命尙衣主簿曺允亨。題書名。寫字官題部。凡四十日訖抄部目。…… 余金『熙朝新語』。康熙中欽定『古今圖書集成』一萬卷。凡卅二典。曰乾象典、歲功典、曆法典、庶徵典、坤輿典、職方典、山川典、邊裔典、皇極典、宮闈典、官常典、家範典、交誼典、氏族典、人事典、閨媛典、藝術典、神異典、禽蟲典、草木典、經籍典、學行典、文學典、字學典、選擧典、銓衡典、食貨典、禮儀典、樂律典、戎政典、祥刑典、考工典。每典復分門類。共六千一百九部。計書五百二十函。又目錄二函。年久銅字殘缺過半。乾隆三十八年。易以木字印『四庫書』應刊樣本。賜名武英殿聚珍板。有御製詩。載御製集。此『圖書集成』始末也。
-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도서집성변증설(圖書集成辨證說)」
해설
   동양의 책에 대한 형태서지학의 술어들-서제(書題: 책의 이마), 서두(書頭: 책의 머리), 목차(目次: 눈), 책의(冊衣), 표제면(標題面), 권수(卷首: 권의 머리) 등-은 신체와 관련된 연상적 의미를 상기시킨다. 책에 관상을 적용할 수 있다면, 목차는 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아닐까?

   목차(contents, a table of contents)는 우리나라 옛 책에서 ‘목록(目錄)’이라 하여 책의 서문 뒤에 놓인다. 중국의 송간본(宋刊本)에 당나라 이하(李賀)의 『이장길문집(李長吉文集)』에는 ‘권목(卷目)’, 정곡(鄭谷)의 『정수우문집(鄭守愚文集)』에는 ‘표목(標目)’이라고 한 사례도 보이지만, 대체로 목록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쓰였다.

   『고금도서집성』은 40권 20책의 목록권(目錄卷)이 있는데, 내용 파악을 용이하게 하고 해당 항목을 찾을 수 있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조선에서는 1776년 정사(正使) 이은(李溵), 부사(副使) 서호수(徐浩修) 등을 주축으로 한 진하 겸 사은사 일행에 의해 1777년 2월에 『고금도서집성』을 입수하였다. 이는 무영전(武英殿)에서 1726년부터 1728년까지 64부를 개화지(開化紙)와 태사련지(太史連紙)로 인쇄한 가운데 개화지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후 정조의 명에 따라 1780년에 열고관(閱古觀)에 보관하고서 편차를 정리하고 소제목(小題目)을 뽑아내어 장서 배치와 책의 목차를 담은 『도서집성분편제차목록(圖書集成分編第次目錄)』을 단책(單冊)으로 만들어서 매우 쉽게 책의 항목을 일별할 수 있게 하였다. 유사한 예로 일본의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古今圖書集成分類目錄)』(文部省國定敎科書共同販賣所, 1912), 영국의 『중국의 대형백과사전 흠정고금도서집성 알파벳순 색인집(An alphabetical index to the Chinese encyclopaedia 欽定古今圖書集成)』(Lionel Giles 편, 1911)도 있다.

   『고금도서집성』의 목차는 단순히 책의 내용을 일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범례를 읽어보면, 하늘, 땅, 사람 순으로 그 편목의 구성과 순서에 일정한 논리를 부여하고 있다. 세상의 책을 우리들 앞에 놓고 어떻게 나눠서 지식을 분류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가 목록권에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유서(類書)의 목차를 읽는다는 것은 당대인의 지식의 지도(地圖)를 다시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위계를 재정(再整)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의 시문을 정리한 문집 목차는 저자의 열력(閱歷)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이자 그곳에 남겨진 발자국과 같아 집, 친구, 여행, 풍경, 유대, 죽음, 희로애락 등이 담겨 있다. 고려 때는 목차와 본문을 분리해서 편집하지 않고 목차에 이어 본문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조선에 와서는 목차와 본문을 따로 엮었다. 총목(總目)은 단순히 권별로 문체명을 기입하고, 권목(卷目)에 해당 문체에 속하는 작품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방식과 각 권의 목록을 모두 엮어 정리한 합권목록(合卷目錄)이 있다.

   책의 내용을 쉽게 파악하는 방식으로써 어떤 방식이 좋은가 보다는 제책(製冊)의 선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목록권을 따로 만들어서 전체 열람에 편리를 추구하기도 있고, 아니면 각 권의 분량에 따라 성책(成冊)하여 해당 책을 펼쳤을 때 내용을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옛 책의 물체성에 따라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옛 책의 크기와 부피는 목록권을 따로 인쇄하거나 각 권의 부피를 고려하여 분책(分冊)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탁일 선생님의 보고에 의하면, 영남 문집은 합권목록을 만드는 경향이 보이며, 호남 문집은 목록을 각 권의 권두에 붙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집안의 문집 간행에도 적용되는데 선조의 문집 체례를 따라 후손들이 편집하는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어떤 날들은 책의 본문을 읽기보다 목차를 보는 나날들로 채워져 있다. 목차가 없는 책은 제목만을 따라 읽는다. 일종의 가상 목차를 만들어 읽은 셈이다. 지식을 담은 옛 책의 대문 앞에서 빗장을 열지 않고 문틈으로 얼핏 훔쳐보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아쉬움이겠지만, 나에게는 열락(悅樂)의 한 형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유섭
글쓴이부유섭(夫裕燮)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주요 역서
  • 『소문 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공역), 휴머니스트, 2011
  • 『일암연기』(공역),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6
  • 『형설기문(한밤에 깨어 옛일을 쓰다)』(공역),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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